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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중*일 예술에 대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글을 인용한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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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일본/한국의
예술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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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예술은 광활한 대륙에 굳건히 정주하려는 의지가 선도한다.
거친 자연과 싸우는 그 의지는 장대하고 태연한 형태를 만들어간다.
널직한 땅에 옆으로 드러누워 안정된 형태를 취하려는 것이
중국의 마음이다. 다른 한편 섬나라 일본은 현란한 색체를
특징으로 하는 예술, 정취의 예술이다. 온화한 기후와 풍요한
물산의 헤택을 향유할 줄 아는 마음, 행복을 누리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일본의 마음은 풍부하고 셈세한 색체의 세계를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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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반도는 반복되는 외세의 침략과 내적 곤경이 겹친 핍진의
땅이다. 이런 곳에 사는 마음은 고향을 모른다. 편히 정주하거나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이 아니라 어디론가 떠나가려는 마음,
오로지 피안에서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불행한 의식이다.
이런 눈물 어린 마음에서는 모든 것을 선으로 표현하는 비애의
예술이 나온다. 정주할 줄 모르고 즐길 줄 모르는 마음,
끊임없이 슬픔으로 흔들리는 마음은 완결된 형태에 도달하지
못하고 색체를 사랑할 여유가 없다. 백의민족은 오로지 요동하는
선을 통해 다른 장소로 도주해 가고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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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과
섬나라와 반도, 하나는 땅에서 안정하고, 하나는 땅을 즐기고,
하나는 땅을 떠난다. 첫째의 길은 강하고, 줄째의 길은 즐겁고,
셋째의 길은 쓸슬하다. 강인한 것은 형태를, 즐거운 것은
색체를, 쓸쓸한 것은 선을 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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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예술에 대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글을
읽자니 <선을 통한 비애의 예술>은
첨성대와
같은 <조화로운 완성>의 한[han]이
아니라 <니인자의
숙명>인 헨[hen]과
결부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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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들이
유난스레 많이 지니고있다는 마음의 응어리는
'한[han]'이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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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한'은 <하나의 조화로운 완성>을 뜻하는
말로, 한국인들이 많이 지닌다는 <마음의 응어리>를
나타내는 <헨[hen]>과는 구분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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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어찌 '한국'의 '한'을 <마음의 응어리>를
나타내는 말과 엮으려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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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ㅓ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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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그럴 리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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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교묘하게 버무려놓은게 마냥 무지로 얼버무리기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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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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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한국'의 '한'을 <마음의 응어리>를
나타내는 말과 결부시키려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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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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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의도로 '한국'의
'한'을 <마음의 응어리>를 나타내는 말과
결부시키려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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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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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하게
버무려진 <한[han]>은
이제 <조화로운 완성의 기틀>로
재조명되고 거듭나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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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음의 응어리>는 <헨[hen]>으로
되어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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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mmar
Le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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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am
/ Te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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